UNESCO Memory of the World

천 년의 지혜, 팔만대장경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호국 정신과 선조들의 위대한 보존 과학의 정수

팔만대장경 목판 실사 이미지

1. 호국(護國)과 일심(一心)의 역사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고려 고종 시대(1236년~1251년)에 걸쳐 약 16년 동안 판각된 인류 최대 규모의 목판 경전입니다. 당시 고려는 몽골군의 무자비한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백성들이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국가적 위기를 불력(佛力)으로 극복하고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대장경 판각이라는 거대한 불사를 단행했습니다.

당시 강화도 대장도감과 남해 분사대장도감에서 제작된 이 경판들은 글자 수가 총 5,200여 만 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그 서체가 한결같고 오탈자가 거의 없습니다. 한 글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한 번씩 올렸던 선조들의 경건한 정성과 하나 된 염원이 빚어낸 인류 문명사적 성취입니다.

선조들이 전하는 마음의 유산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종교적인 기록을 넘어, 외풍에 꺾이지 않는 겨레의 의지와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지혜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사랑이 담긴 타임캡슐입니다.

2. 천 년을 견딘 목판 제작의 과학

팔만대장경 경판이 오늘날까지 썩거나 뒤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은 과학적이고 철저한 목재 가공 공정에 있습니다.

01 바닷물 염수 건조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을 베어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두었습니다. 이는 나무 안의 진액을 빼내고 수분 팽창률을 균일하게 만들어 갈라짐을 방지하는 삼투압 효과를 냈습니다.

02 소금물에 찌기

바닷물에서 건진 나무를 소금물에 삶아 찌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는 나무 섬유질을 부드럽게 만들어 뒤틀림을 방지하고 해충의 유입을 원천 차단하는 방충 효과를 지녔습니다.

03 음지에서의 건조

삶은 나무를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잘 통하는 음지에서 다시 수년간 말려 목재의 변형을 완전히 잡았습니다.

04 각목 보강과 옻칠

글자를 새긴 후에는 양끝에 마모를 막고 휠 현상을 방지하는 마구리를 달았으며, 습기와 해충으로부터 경판을 영구히 보호하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 깊은 옻칠을 입혔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 실사 이미지

3. 장경판전(藏經板殿), 자연과 호흡하는 건축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 장경판전은 현대 과학자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는 '자연형 기후 조절 시스템'을 품고 있습니다. 에어컨이나 제습기 같은 기계 장치 없이도 바람과 흙의 힘만으로 천 년간 경판을 온전히 품었습니다.

자연 공기 대류의 법칙 (비대칭 창문)

장경판전의 앞면과 뒷면 창은 크기가 다르게 설계되었습니다. 남쪽 창은 아래쪽이 크고 위쪽이 작으며, 북쪽 창은 반대로 위쪽이 크고 아래쪽이 작습니다. 이 비대칭 구조는 건물 내부로 들어온 바람이 상하좌우로 둥글게 소용돌이치며 자연스레 순환하도록 만들어 실내 습도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배출되게 합니다.

바닥재의 습도 조절 과학

판전의 바닥은 콘크리트 대신 깊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숯, 석회, 소금, 모래, 황토를 층층이 다져 채웠습니다. 비가 많이 와 실내가 습해지면 바닥이 습기를 흡수하고, 가뭄이 들어 건조해지면 바닥에 머금었던 수분을 공기 중으로 방출하는 천연 자동 항온·항습 장치 역할을 수행합니다.